가브리엘 샤넬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패션 업계를 바꾼 인물이다. 무에서 시작하여 그가 일구어낸 저지 정장, 트위드 정장, 모자, 향수, 가방, 목걸이, 미니백 등의 패션 아이템들과 샤넬의 인생은 현대패션의 고전이 되어 샤넬 브랜드를 빛나게 한다. 가브리엘샤넬의 일생을 다룬 벌거벗은 세계사 110회의 방송 시간, 재방송, 출연진, 회차정보를 살펴보자.
벌거벗은 세계사 110회 방송정보
방송시간
- 110회: 2023년 8월 1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 111회: 2023년 8월 8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재방송
날짜 | tvN | tvN STORY |
8월 02일 (수) | 23:05 11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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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3일 (목) | 06:10 15회 18:20 11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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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4일 (금) | 03:00 110회 | |
8월 05일 (토) | 06:00 28회 12:30 11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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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6일 (일) | 09:40 110회 22:10 106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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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일 (월) | 06:00 13:30 1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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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8일 (화) | 22:10 111회 본방 | 12:20 18:30 |
출연진
- 실로에 안자르지(Siloe Anzardi) : 국적 프랑스, 미국 보스턴 레슬리 대학교 예술치료학과, 캐나다 콩코르디어대학원 예술심리치료 석사, 현재 모델 겸 프랑스어 강사, 한국 거주 8년 차
- 신현지 : 1996년생 대한민국 톱모델, 2013년 ONSTYLE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4에서 데뷔, 2020년 동양인 최초로 샤넬 메인 쇼의 클로징 톱 모델 장식
- 서이자 교수 : 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연세대 우수저서 수상, 강의우수교수상 13회 수상
파란만장한 삶 위에 세운 샤넬 제국
"럭셔리는 편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럭셔리가 아니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등의 어록과 함께 제니, 티모시 샬라메, 지드래곤, 신현지 등이 모델로 출연한 패션의 제왕 '샤넬(CHANEL)'은 20조 원의 매출과 140조의 기업가치를 가진 현대 패션계의 교과서적인 브랜드이다.
파리 1구
프랑스 파리 1구에 가면 샤넬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방돔광장(Place Vendôme)의 8 각형은 샤넬 향수의 뚜껑 모양에 영감을 주었고, 1898년 개장한 리츠 호텔 2층에는 샤넬이 30여 년간 머무른 스위트룸이 있다. '코코 샤넬 스위트룸'이라고 불리는 이 방의 가격은 패션위크 기간에는 1박에 4천만 원에 이른다. 명품 브랜드 쇼핑 거리인 깡봉가 31번지에는 샤넬이 직접 운영한 샤넬 본점이 있다.
어린 시절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 중부 소뮈르에서 태어나지만,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떠돌이 행상이던 샤넬의 아빠 '알베르 샤넬'은 술과 노름을 좋아하고 바람기가 많아 19살인 샤넬의 엄마 '잔 드볼'을 임신시켜 놓고 도망가 버리는데, 샤넬의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찾는다.
남편 옆에서 첫째 아이를 출산하지만 알베르 샤넬은 3개월 만에 아내를 임신시키고 또 도망간다. 두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가브리엘 샤넬이다. 무책임한 남편은 계속 떠돌아다니고 샤넬의 엄마는 10년 간 남편을 찾아다니면서 이 과정에서 총 3남 3녀가 태어났다.
샤넬도 어린 시절 계속 떠돌아다녀야 했는데, 1895년 12살에 엄마가 33살로 죽고 샤넬과 자매들은 오바진에 있는 수녀원 소속 고아원에 보내졌고, 아들들은 농장에 팔렸다. 샤넬은 고아원에서 몽유병과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고, 1901년 18살에 고아원을 퇴소하고 물랭에 있는 수녀원 소속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샤넬은 이곳에서 무시와 차별을 당한다.
재봉사 시절과 가수 도전
샤넬은 돈을 벌어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살에 학교에서 배운 바느질로 물랭에서 보조 재봉사로 취직한다. 샤넬은 바느질 솜씨가 좋았지만 박봉에 시달렸고 저녁에는 주인 몰래 다른 일감을 받아서 돈을 벌었다. 재봉일의 한계를 깨달은 샤넬은 가수의 꿈을 안고 군인들을 위한 음악카페에 중간에 나와 짧은 노래를 부르는 마스코트 걸이 된다.
샤넬은 "누가 코코를 보았니?"라는 노래로 카페에서 큰 인기를 얻고, '코코'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가수 오디션에 수차례 도전하지만 줄줄이 탈락하고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다시 바느질을 한다. 이때 '에티엔 발상'이라는 유부남 사업가의 제안으로 그의 성에서 살게 된 샤넬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승마를 배운다. 말을 잘 타기 위해 당시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된 바지를 입는다.
당시 여성들은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해 코르셋을 입었고, 심지어 무릎을 묶어 엉덩이를 풍성하게 보이게 하는 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이상적인 여성의 허리사이즈는 18인치(46cm)였고, 억지로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은 여성의 장기를 비정상적으로 변형시켰다.
바지를 입고 승마하는 샤넬은 눈길을 끌었지만, 샤넬은 성 안에서 만나는 상류층 사람들에게 하층민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모자 디자이너
프랑스혁명 후에 가발이 금지되고 모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모자는 너무 커서 대화하기조차 힘들었다.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고 샤넬만의 스타일로 모자를 만든다. 샤넬의 모자는 새로움을 찾던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모자 가게를 열기 위해 엔티엔 발상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샤넬은 에티엔 발상의 친구인 '보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27살에 보이의 도움으로 모자 가게를 열고, 상류층 여성과 배우들을 단골손님으로 확보해 성공한다. 보이는 샤넬이 만난 남자 중에 샤넬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였다고 한다.
의상 디자이너
샤넬은 이제 의상 디자이너가 되려는 목표를 세운다. 당시 고급 의상을 만드는 오트쿠튀르의 대표 의상 디자이너인 '쿠튀리에'는 남성의 영역이었다. 샤넬은 보이의 투자를 받아 파리 대신 '도빌'이라는 해안가 휴양지에 부티크를 연다.
당시 여성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샤넬은 편안한 여성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주머니가 달린 옷을 만들어 본인이 직접 옷을 입는 셀프 홍보를 해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고 휴양지 도빌은 텅 비지만 샤넬은 꿋꿋하게 가게 문을 열었고, 파리 상류층이 도빌로 피난을 오면서 옷을 못 챙긴 여성들이 샤넬의 의상실로 몰렸다.
도빌의 성공을 발판으로 1915년 보이의 투자를 받아 또 다른 휴양지인 비아리츠에 새로운 부티끄를 연다. 샤넬은 수백 벌의 옷을 디자인하고 2가지 전략을 세운다. (1) 럭셔리 전략으로 상류층을 공략하기 위해 옷값을 비싸게 책정한다. 현재 가치로 옷 한 벌이 약 5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2) 유명인에게 의상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협찬 마케팅을 구사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샤넬의 인기는 유럽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사업체는 300명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샤넬의 히트 아이템
1차 대전 이후 2차 대전 전까지 1920년대~1930년대에 승승장구하는 샤넬의 히트 아이템 4가지를 살펴보자.
(1) 저지 원단(Jersy)
샤넬은 편안함, 활동성, 우아함을 갖춘 여성 정장을 위해 속옷 정도에만 사용하던 저지 원단을 사용한다. 여성들도 1차 대전 당시 일터에 투입되면서 활동성이 뛰어난 샤넬의 저지 정장이 큰 인기를 끌었다. 샤넬은 돈을 벌어서 보이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아 자립에 성공하고, 파리의 깡봉가 31번지에 부티끄를 연다.
(2) 향수
1919년 크리스마스날 보이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샤넬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한다. 자신의 브랜드를 상류층에서 일반대중으로 넓히기 위해 향수 샤넬 No. 5를 출시한다. 샤넬 No. 5는 인공 향료인 알데하이드와 수십 가지 꽃향기를 조합한 최초의 인공 향수다.
숫자 5를 사용한 배경에는 (1) 샤넬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라는 설과, (2) 여러 가지 샘플 중에 다섯 번째 샘플을 선택해서 5를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메릴린 먼로가 샤넬 No.5를 언급하면서 샤넬의 향수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37살이던 샤넬은 29살의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을 만나 연인이 된다. 그에게서 러시아의 향수 이야기를 듣고 샤넬의 향수 제조에 영감을 받게 된다. 샤넬의 향수는 희소성으로 인기를 끌고, 정식 출시하자 큰 인기를 끈다. 샤넬은 향수 회사 "파르펠 샤넬"을 설립하고 파리에 향수 매장을 4개까지 연다.
(3) 진주목걸이
샤넬은 여성들이 비싼 보석을 하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고, 진짜 보석 대신에 인조 보석을 활용해서 모조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 출시했다. 샤넬의 모조 진주 목걸이는 계속해서 샤넬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아 왔다.
(4) 리틀블랙드레스
샤넬의 리틀블랙드레스는 시크의 상징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당시 일상복으로 검정 드레스를 입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고, 검은색 옷은 남자들이 입는 옷이었다. 샤넬은 고아원 시절 수녀의 검은 옷에서 영감을 받아, 스커트 길이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짧아진 검정 드레스를 출시한다.
출시 후 유럽과 미국에서 극찬이 이어졌고, 샤넬의 검정 드레스는 입센로랑, 베르사체, 페라가모 등의 기라성 같은 후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었다. 미국 쇼핑몰에 대량의 카피제품이 나돌았지만 샤넬은 자신의 패션 철학이 인정받은 것이라며 오히려 좋아했다.
1930년대 초가 되어 샤넬의 사업체는 전 세계에 26개 매장과 2,400명의 직원을 보유하게 된다. 샤넬은 1923년 40살에 모나코에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만나는데, 샤넬은 처음에는 그를 냉대했지만 공작은 샤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영국의 왕세자와 함께 그녀를 찾아가기도 하는 등 그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을 열고 연인이 된다.
샤넬은 공작의 성에서 윈스턴 처칠을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지만 공작과 교제한 지 5년 만에 이별하게 된다. 당시 샤넬은 고령으로 임신이 쉽지 않았고 공작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자 1929년 다툼 끝에 결별하는데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샤넬과 이별 후에 곧바로 23살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
2차 대전과 스파이 의혹
48살의 샤넬은 할리우드 영화의 의상 디자인을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1930년대 중반이 되어 샤넬은 직원 4천 명, 1년에 28,000벌을 생산하는 패션 제국을 이룩했다.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샤넬은 파리 의상실의 문을 닫고, 향수와 일부 액세서리만 판매했다.
샤넬은 독일군을 피해 지방에 있는 조카집으로 피신해야 했는데 조카가 독일군 포로가 되자 조카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온다. 조카 소식을 수소문하던 56살의 샤넬은 당시 파리에 있는 독일 대사관의 외교관 43살의 딩클라게를 만나게 되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샤넬은 딩클라게에게 조카 소식을 부탁하고 이후 샤넬은 나치의 스파이로 의심을 받는다. 샤넬이 전쟁 중에 독일 베를린을 들렀다가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과정에서 스파이 의혹이 불거졌고, 때마침 전쟁 중에 샤넬의 조카가 독일 수용소에서 풀려나면서 더욱 의심을 받게 된다.
2차 대전 후 독일인과 사귄 프랑스 여자들은 머리를 삭발당하고 공개적으로 조롱당했다. 샤넬도 숙청위원회에 불려 갔다가 곧 풀려나지만, 독일인과 사귄 샤넬의 명성은 큰 타격을 받는다. 샤넬은 스위스 로잔으로 망명하여 패션 업계에 거리를 두면서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파리로 복귀하는 샤넬
2차 대전 후 패션업계는 크리스천 디올의 뉴룩 등이 유행하면서 화려하고 여성성이 돋보이는 옛날 패션으로 돌아갔다. 샤넬은 이에 분노하며 1954년 71살에 파리 패션계에 복귀한다. 1954년 2월 5일 샤넬의 패션쇼에 2천 명이 넘는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프랑스 언론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미국 언론은 극찬한다.
특히 이때 선보인 투피스의 트위드 정장은 1950년대 미국 커리어 우먼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트위드 열풍이 불었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등 유명인들이 트위드 정장을 즐겨 입었다.
샤넬은 파격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샤넬 백을 출시한다. "여성들의 손에 자유를 준다"는 철학으로 어깨에 걸 수 있도록 하는 긴 끈을 최초로 사용했다. 샤넬은 1957년 패션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니먼 마커스 상'을 수상하여 패션으로 세상을 바꾼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1969년 85살에 샤넬의 건강이 악화되어 뇌졸중과 오른손 마비가 왔고 수녀원에서 겪던 몽유병이 재발했다. 결국 샤넬은 1971년 87세 1971년 1월 10일 침대에 누워 사망했고, 2차 대전 중에 독일인과 사귄 일에 대해 제대로 전범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땅에 묻히지 못하고 스위스 로잔에 묻힌다.
가브리엘 샤넬의 일생을 다룬 벌거벗은 세계사 110회의 방송 시간, 재방송, 출연진, 회차정보를 살펴보자. 여성들에게 자유를 입힌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은 그녀의 수많은 패션 아이템들을 통해 속박과 관념을 떨쳐버리고 자유와 생동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다음 주 벌거벗은 세계사 111회에서는 아르헨티나의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산타 에비타의 진실을 파헤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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