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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문

벌거벗은세계사 99회 일본 자이니치 코리안 뜻 재일교포 방송시간 재방송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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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라고 부르는 자이니치 코리안의 뜻은 무엇인가? 일본에 재일교포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자이니치 코리아의 역사적인 배경과 실상은 잘 모른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자이니치 코리안은 일본 사회에서 지금도 차별 속에 살고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의 방송시간, 재방송, 출연진 정보와 함께 일본 자이니치 코리안 재일교포의 100년 간의 역사를 살펴본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자이니치 코리안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기댈곳이 없는 자이니치 코리안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방송정보

방송시간

99회 :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100회 :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재방송

날짜 tvN tvN STORY
5월 17일 (수) 17:20 99회 23:20 99회
5월 18일 (목)   12:40 99회
5월 19일 (금) 01:00
08:00
09:20 63회
14:10 99회
5월 20일 (토) 08:00 99회 01:10 39회
18:10 99회
5월 21일 (일)   11:10 99회
20:30 99회
5월 22일 (월) 02:30 99회 11:20
5월 23일 (화) 22:10 100회 본방 12:30

 

출연진

벌거벗은 세계사 99회에는 은지원, 혜성이 MC를 계속 진행했고, 규현 대신에 황제성이 출연했다. 여행 메이트로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으로 현재 동국대학교 일본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한국에 8년째 살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씨가 출연했다. 건국대 일어교육과 박삼헌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100회 특집 이벤트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 감사 특집 | 소문내기 이벤트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 감사 특집 | 소문내기 이벤트

tvn.cjenm.com

 

100회 예고편

 

 

[다음이야기]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에 숨겨진 충격적 비밀! 😮

벌거벗은 세계사 | 티빙에서 스트리밍 : https://tving.onelink.me/xHqC/30a78d6f <벌거벗은 세계사> [화] 밤 10:10 tvN 방송 #벌거벗은세계사 #은지원 #규현 #이혜성

tv.naver.com

 

 

 

 

 

해방 전 재일교포 자이니치 코리안

자이니치는 "재일(在日)", "일본에 있는"이란 뜻으로 자이니치 코리안 하면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이라는 뜻이 된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나 조선인을 빼버리고 줄여서 "자이니치"라고 많이 부르는데, 자이니치라고만 부르면 욕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현재 일본에는 44만 명의 자이니치 코리안이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재일동포, 재일교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1905년부터 일본에서 살기 시작한 재일교포 자이니치 코리안은 매우 아픈 역사적 배경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일본 우익들은 자이니치 코리안을 정치적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아 왔고, 지금까지도 폭언, 방화, 살인 등 온갖 만행이 이어지고 있다. 

 

재일교포의 시작

오늘 첫 번째 여행지는 일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다. 일본 본토에서 가장 서쪽에 있고, 부산에서 225km 떨어져 있다. 부산의 자매결연 도시로 아치노마타 사쿠라 공원, 1,780미터 길이의 츠노시마 대교, 츠노시마 등대, 저렴한 스시와 회를 먹을 수 있는 가라토 시장이 유명하다. 

 

1905년 관부연락선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 후 부산과 시노모세키 간 11시간 30분이 걸리고 1,680톤 급으로 최대 317명이 탈 수 있는 관부연락선을 개통한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바로 자이니치 코리안의 시작이다. 1905년 4천 명, 1915년 1만 5천 명에 이어, 1920년에는 4만 명까지 늘어난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1905년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출발하는 관부연락선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1905년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출발하는 관부연락선

 

 

 

 

 

공장과 공사판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조선인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옮겨 갔는데, 시모노세키에서 왼쪽으로는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른쪽으로는 히로시마, 고베, 오사카, 도쿄로 흩어진다. 도시에서 일본인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고되고, 더럽고, 위험한' 3K 일자리를 전전하는데, 주로 토목공사, 발전소, 급경사 지형 또는 나선형 지형에 철도를 까는 일에 일본인 대신 조선인이 일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본은 한국 농민들의 토지를 강제 수탈했고, 많은 조선의 농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노동력이 필요하여 조선인 노동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이렇게 건너간 조선인은 절반은 공장에서 일하고, 절반은 토목공사 등 육체노동을 했다. 호적에는 조선으로 표기되었고, 자이니치 코리안은 일본인도 외국인도 아닌 2등 국민으로 살게 된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일본 토목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일본 토목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

 

호르몬의 유래

1924년 일본 내무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월급이 17엔, 조선인이 9엔으로, 조선인들은 끼니를 잇기도 힘들었고, 일본인이 버리거나 가축 사료로 사용하는 호르몬을 먹었다. '호루'는 버리다, '모노'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호르몬은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일본인은 내장은 먹지 않고 버리는데, 조선인은 끼니를 채우기 위해 내장을 구해 구워 먹거나 국에 넣어 먹었던 것이 오늘날의 일본 호르몬의 시초인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호르몬은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간토 대지진과 재일교포

1923년 9월 1일 7.9 규모의 간토 대지진 발생하여, 도쿄와 이바라키현 일대에서 10만 5천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도쿄의 60%, 요코하마의 80%가 잿더미가 되었고 지진 피해액은 GDP의 삼분의 일에 달했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조선인과 공산주의자들이 약탈, 성폭행, 방화를 저질러 일본을 파괴하려 한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극단적인 우익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군중은 '자경단'을 조직해 위험한 조선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전국에 3,600개의 자경단이 조직되어, 조선인을 학살한다. 영화 <박열>에 보면 어려운 일본어를 발음하게 해서 이상하게 발음하면 조선인으로 몰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8천 명의 조선인이 자경단에 의해 죽었고, 미확인 시신만 해도 1만 5천 구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학살하는 자경단의 활동을 제지하지 않았고, 지진으로 발생한 국민들의 엄청난 불만을 조선인과 공산주의자들에게 돌려 버리는 술수를 쓰기에 바빴다. 이때부터 자이니치 코리안은 일본 정부와 극우들의 정치적 먹잇감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영화 &lt;박열&gt;에서 어려운 일본말을 하게 하는 자경단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영화 <박열>에서 어려운 일본말을 하게 하는 자경단

 

 

도시 재건 공사에 조선인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관동 대지진 이후 재일 조선인은 더욱 늘어난다. 더 많은 조선인을 모집해 갔고, 자이니치 코라안의 수는 1930년 42만 명에 이르더니, 1940년 이후 강제 징용까지 더해져 1945년 2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해방 후 재일교포 자이니치 코리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재일교포

1945년 일본 패망 후, 일본 국토는 폐허가 되고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매일 수십 명이 사망한다. 당시 한 일본인 관리는 조선인들의 ‘밥을 많이 먹는 습관’이 일본을 위기로 몰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발언을 한다. 식량 부족 탓을 또다시 애꿎은 조선인들에게 돌린 것이다. 1946년까지 조선인은 140만 명이 귀향하고 60만 명이 일본에 남는다. 

 

맥아더 장군은 지령으로 일본이 중국계 대만인과 조선인을 해방 민족이자 일본 신민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인을 내쫓을 궁리를 하게 되고, 1947년 일본제국헌법을 일본국헌법으로 개정하여 발표하기 전날, 천황 칙령으로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신분을 당분간 외국인으로 취급한다'라고 발표한다.  

 

 

 

 

 

일본 국민 > 외국인 > 무국적자 난민

일본국헌법에는 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를 일본 국민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외국인이 된 조선인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일본은 새로운 헌법에 '조선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외국인 등록증을 항상 휴대하지 않으면 강제 퇴거한다'는 조항을 넣어, 조선인을 일본에서 쫓아내려 시도한 것이다.     

 

외국인 등록증에는 실체가 없는 ‘조선’이라는 국명이 쓰였고, 조선인을 무국적으로 간주하여 난민으로 취급했다. 지금도 조선적으로 표기한 자이니치 코리안이 6천 명 넘게 있어, 해외여행 등 여러 가지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1955년 열손가락 전부를 지문 날인하게 해 조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외국인 등록증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자이니치 코리안의 외국인 등록증

 

돌아올 수 없는 고국과 무국적자의 고단한 삶

일본은 조선인을 일본 땅에서 몰아내려고 노력했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조선인들이 일본 땅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인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사라진 셈이고, 또 이미 일본에 터를 잡아 돌아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전후 자이니치 코리안은 무국적자 신분으로 쓰레기 줍는 일, 밀주 만드는 일 등 일본인들이 꺼려하는 일을 하며 고단하게 살아간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불법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자이니치 코리안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불법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자이니치 코리안

 

 

신분을 숨기며 살아온 자이니치 코리안

파친코와 야쿠자

자이니치 코리안은 주로 음지에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갔는데 그중 하나가 파칭코 사업이다. 기계 베어링에 사용되는 구슬로 작동하는 '파친코'라는 기계를 이용한 파친코 사업도 그중 하나다. 파친코는 구슬이 내려오면서 '파친 + 코로코로'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전역에 4만 2천 개의 파친코 사업장이 있었고, 현금을 만질 수 있고 소자본으로 가능한 파친코 사업에 조선인들이 많이 뛰어들었다. 파친코 사업 전체 매출의 70%를 자이니치 코리안이 차지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야쿠자에도 자이니치 코리안 조직이 있다고 한다. 전국 21개의 야쿠자 조직 중에 5개 정도가 자이니치 코라안의 조직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양원석이 이끄는 야쿠자 조직이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파친코 기계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파친코 기계

 

역도산

1950~60년대에는 자이니치 코리안들이 실력으로 평가받는 스포츠와 연예계에 많이 진출했다.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대표적인데, 역도산은 1953년 미국 프로레슬러를 이긴 최초의 일본인으로 기록된다. 역도산을 기점으로 프로레슬러가 일본의 국민 스포츠가 되었고, 역도산은 자신이 자이니치 코리안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자이니치 코리안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역도산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자이니치 코리안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역도산

 

 

 

 

 

연예계 

현재 귀화하지 않은 자이니치 코리안의 90%가 일본 이름으로 살고 있다. 1970~80년대 일본의 구민 배우이자 가수로 유명한 '마츠다 유사쿠'가 대표적인 경우다. <블랙레인>로 데뷔했고, 만화 <카우보이 비밥>의 캐릭터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마츠다 유사쿠의 두 아들인 마츠다 류헤이와 마츠다 쇼타도 유명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차남 마츠다 쇼타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출신을 밝히면서 알려졌다.

 

예전에는 자이니치 코리안 출신이 밝혀지면 방송 출연과 결혼 등 사회적 활동에 불이익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45년 간 일본의 국민가수로 활동한 '미소라 히바리'도 자이니치 코리아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자이니치 코리안 사회의 분열, 민단과 조총련

우파의 귀환

1952년 연합군 사령부가 철수하고, 일본 정계에는 우파 성향의 전범들이 돌아와 1955년 11월 15일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을 결성한다.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가 56, 57대 총리경제를 맡으면서 일본 경제의 희망으로 떠올랐고, 자민당과 기시 노부스케는 사회 발전 방해 요인으로 자이니치 코리안을 지목한다.

 

자이니치 코리안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어 생활보호대상자가 많았다. 당시 북한이 1956년 천리마 운동을 벌이면서 자이니치 코리안들은 귀환하면 일자리와 집을 준다는 북한방송을 들으며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여기게 된다. 자민당은 자이니치 코리안을 일본에서 쫓아내기 위해 북한과 협의 끝에 북송 사업을 추진한다. 다시 한번 자이니치 코리안이 일본정부에 속아 이용당하는 순간이다. 

 

 

 

 

 

민단과 조총련, 그리고 북송

북송사업을 두고 자이니치 코리안 사회는 북송을 찬성하고 북한을 대변하는 조총련과 북송을 반대하며 한국을 대변하는 민단으로 분열되어 갈등한다. 1959년 12월 14일 북한으로 가는 1진 975명이 처음으로 출발하고, 1959~1984년의 25년 간 180여 차례에 걸쳐 10만 명이 북으로 갔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1959년 일본에서 북한으로 가는 북송선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1959년 일본에서 북한으로 가는 북송선

 

 

북한에 도착한 자이니치 코리안은 너무 참혹한 현실을 보게 되었고, 대형 사기극임이 밝혀졌다. 44년 만에 탈북한 가와사키 에이코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한 거리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나뒹굴었고, 일본에서 간 사람들도 굶어 죽고 정신병 걸린 사람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자이니치 코리안들은 북한의 실상을 우표 뒷면에 붙여서 일본 가족들에게 보낸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북송된 자이니치 코리안이 보내온 우표 뒤에 북으로 오지 말라는 애절한 표현이 담겨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북송된 자이니치 코리안이 보내온 우표 뒤에 북으로 오지 말라는 애절한 표현이 담겨 있다.

 

 

한일협정과 선택의 기로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조선적 보유자가 한국 국적으로 변경하면 '협정 영주권'을 부여하기로 한다. 당시 자이니치 코리안은 (1) 일본 귀화 (2) 한국 국적 취득(협정 영주권) (3) 조선적(무국적 난민)으로 남는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 총 60만 명 중에 33만 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많은 이들이 협정영주권을 취득했지만, 협정영주권에는 참정권도 없고 공직 진출도 불가능하는 등 사실상 부당한 대우는 계속되었다.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8년 1월 23일, 나가사키현 사세보항에서 출발한 미 함선이 북한에 나포되고, 미군 83명이 인질로 잡힌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과 함선을 원산만에 배치하여 11개월 간 대치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일본 국민들은 전쟁의 불안감에 빠진다. 일본 사회는 불안감의 원인을 북한으로 인식하고, 반공을 주장한 우익 세력이 득세하는데, 또다시 자이니치 코리안들를 타깃으로 폭행을 자행한다. 

 

일본인들은 자이니치 코리안 여학생들이 북한 여성들이 입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닌다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당시 조총련 계열의 조선학교는 64개교에 7천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일본 사회는 북한과 조선학교를 동일시하여, 또래 일본 학생들이 조선학교 여학생들의 치마를 칼로 뜯는 등의 행동을 자행한다.

 

급기야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패싸움이 일어나고, 1979년 중학생 임현일 군의 투신자살 사건, 1983년 조선학교 여학생 3명이 나무방망이에 기습당하는 등 조선학교 학생들을 향한 일본 사회의 기습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일본인들에게 찢어진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일본인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진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

 

 

오늘날도 계속되는 자이니치 코리안 학대

일본의 위기와 자이니치 코리안을 향한 분풀이

잃어버린 20년

일본은 1964년 이후 고도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경제 2위에 환호하지만, 1990년대 버블이 붕괴된다. 반면 한국은 고속 성장을 계속하여 일본 사회는 한국을 견제하기 시작하고, 자이니치 코리안의 불안감에 살아간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

1995년 1월 17일 한신 아와지 대지진 발생하여 6,300명 사망, 44만 여 가구 소실, 9조 엔의 피해금액이 발생한다. 자이니치 코리안도 140명이 사망했는데, 일본 우익 의원은 오히려 자이니치 코리안이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망언을 한다.  

 

한류 열풍

2000대 초 혐한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는 ‘한류 열풍’ 때문이다. 겨울 연가, 욘사마 배용준으로 한류 열풍 시작되었고, 이후 대장금, 태왕사신기 등 한국 드라마 돌풍이 불었다. 2010년 대 소녀시대, KARA, 빅뱅, 2NE1 등 한국 연예인들의 일본 진출은 계속되었다. 한류 열풍에 일본 우익은 반응한다.

 

 

 

 

 

일본 우익의 자이니치 코리안 저격

일본 우익은 자신들의 아류라고 생각했던 한류가 일본에서 번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젊은 층의 우익 세력이 '혐한'으로 결집하기 시작한다. ‘혐한류’라는 만화는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왜곡된 정보로 가득한데, 100만 권 이상이 판매되는 유행을 일으키며 젊은 층이 혐한으로 결집한다. 

 

 

벌거벗은 세계사 99회&#44; 100만권 이상 팔린 &quot;혐한류&quot; 만화책
벌거벗은 세계사 99회, 100만권 이상 팔린 "혐한류" 만화책

 

 

젊은 층의 넷 우익들은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해 유언비어를 터뜨린다. 일하려 하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일본에 기생하는 미개한 토인이고,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이다, 조선 기생충 등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혐한류'를 읽고 영향을 받은 사쿠라이 마코토는 오프라인 우익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인 "재특회”를 결성하여 자이니치 코리안의 특별 영주권, 생활보호대상자 특권 등을 공격한다. 이들은 자이니치 코리안을 모자란 아이라는 뜻을 가진 '총코'라고 표현하며 일본사회를 선동한다.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은 매출의 70%가 하락하여 폐업 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일본의 정치권은 우경화되어 아베 신조는 2013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우익 기업인 후지주택은 사내 문서로 자이니치 코리안을 매국노, 매춘부 등으로 공격하는 혐한 문서를 배포하였고, 이를 참지 못한 후지주택에 근무하는 자이니치 코리안의 직원은 5년간 법적 투쟁 끝에 132만 엔의 배상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인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 회장은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망언과 비하 발언을 일삼았는데, DHC 불매 운동으로 결국 한국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2021년 교토 외곽의 자이니치 코리안이 사는 우토로 마을 방화 사건으로 건물 7채가 전소되고, 일제 강점기 역사 자료 50점이 소실되는 등 자이니치 코리안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2016년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을 시행하고, 혐한 시위대를 대상으로 반혐오, 반차별 운동을 펼치는 "카운터스"라는 조직이 창단되기도 하는 등 사회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자이니치 코리안에 대한 일본 극우 세력의 공격은 여전하다.

 

자이니치 코리안 44만 명은 일본 사회에서는 극우 세력에 의해 차별과 학대를 받고 있고,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 벌거벗은 세계사의 방송을 계기로 자이니치 코리안의 실체를 정확히 바라 보고, 일본의 강제 동원, 위안부 만행과 아울러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로 마음에 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음 주 벌거벗은 세계사는 100회 특집으로 (1) 소문내기 이벤트와 (2)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편을 방송하는데, 본방송 퀴즈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하니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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