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가사비센스, 콜로니아 구엘 성당, 구엘 저택, 카사 밀라 등을 남긴 가우디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가로 그가 묻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사후에도 건축을 계속하고 있다.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 특집방송의 시청자 퀴즈이벤트, 방송 시간, 재방송, 출연진 정보와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작품 세계에 빠져보자.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 방송정보
방송시간
100회 :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가우디 편)
101회(예정) : 2023년 5월 30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
재방송
날짜 | tvN | tvN STORY |
5월 24일 (수) | 17:20 100회 | 14:05 34회 23:20 100회 |
5월 25일 (목) | 09:10 24회 13:40 10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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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금) | 00:20 61회 10:10 10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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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일) | 11:00 100회 23:40 10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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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월) | 02:30 100회 10:00 |
13:30 |
5월 30일 (화) | 05:10 22:10 101회 본방 |
13:10 |
출연진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에는 은지원, 혜성, 규현과 함께 여행 메이트로 독일 출신 건축가로 한국에 14년째 살고 있는 다니엘과 스페인 톨레도 출신으로 한국에서 7년째 살면서 스페인어 강사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미키가 출연하고,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가 진행을 맡는다.
100회 특집 시청자 퀴즈이벤트
벌거벗은 세계사 잔혹사 편과 경제 편이 새로 나왔다. 아래 100회 퀴즈를 응모하면 이북 리더기와 벌거벗은 경제사 잔혹사 편, 경제 편 도서를 경품으로 추천하여 증정한다. 아래 링크를 통해 24일까지 응모해 보자.
[벌거벗은 세계사] 100회 감사 특집 | 대국민 실시간 퀴즈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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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성장
오늘의 주인공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자신의 철학과 천재적인 발상을 건축에 반영하여, 건축을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건축의 신'으로 불린다. 가우디 이전에는 특색 없는 도시였던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새로 썼다. 현재 바르셀로나의 관광 수입은 연간 19조에 달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1년 입장료만 9천만 달러로 약 1,200 억에 달한다. 안토니 가우디가 성장한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자.
건축가 가우디를 키워낸 타라고나
가우디의 고향 스페인 타라고나(Tarragona)는 해안가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로, 로마시대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지였다. 스페인 최초의 로마 요새였던 타라고나에는 로마시대의 원형 경기장, 로마 서커스, 물을 끌어오는 데 사용되었던 악마의 다리 등의 로마시대 유적이 있고, 200년간 이어온 전통문화축제인 인간 탑 쌓기 축제가 유명하다. 타라고나에 간다면 맛있는 '먹물 파에야 아로스 네그레'를 맛볼 수 있다.
숲과 강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여신의 사랑이 깃든 아름다운 곳으로 지중해의 발코니라 불리는 타라고나에서 안토니 가우디는 1852년 6월 25일 대장장이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3남 2녀의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2명은 어려서 사망하고 형, 누나, 가우디의 3남매만 같이 자란다.
가우디도 몸이 약하게 태어나서, 학교에 자주 빠지게 되었고 대신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로마의 수많은 유적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가우디 건축 인생의 든든한 배경이 된다. 또 가우디의 집안은 4대에 걸친 대장장이 집안으로 가우디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가우디의 My Way 일화
가우디의 아버지는 가우디에게 대장장이를 물려주지 않고, 땅을 팔아 가우디를 건축학교에 보낸다. 1874년 22살에, 바르셀로나 건축학교 입학한 가우디는 건축에 대한 열정과 고집이 넘쳤다. 기말과제로 공동묘지 입구 설계가 주어졌는데, 가우디는 설계에 고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교수와 크게 다투고 시험장을 뛰쳐나온다.
가우디는 졸업 작품에도 사람을 넣어 설계하고, 학장의 설계도에 대해서도 지적질을 함으로써, 엘리아스 로젠 학장의 눈밖에 난다. 이 시절 3년 동안 형, 어머니, 누나가 차례로 죽게 되고 가우디는 우울증에 시달린다. 연로한 아버지만 남게 되자 가우디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가우디는 26세에 건축가 자격증을 취득하여 건축사무실을 열지만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가우디가 맡은 첫 번째 일은 타라고나 시청의 가로등을 설계하여 설치하는 일로, 가로등 하나에 예산이 336페세타인데 가우디는 2,300페세타짜리의 예술적인 가로등을 만들었다. 가로등은 2개만 겨우 설치됐고, 시청과 싸운 끝에 대금의 삼분의 일만 겨우 받아냈다. 안정을 포기하고 작품을 고집한 가우디의 면모가 보이는 일화다. 시청과 틀어진 가우디는 다른 건축가의 조수와 가구 디자인 등의 알바활동으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가우디의 7가지 건축물에 숨겨진 비밀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 작품 7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콜로니아 구엘 성당(Colonia GuellChurch), 카사 비센스(Casa Vicens), 구엘 저택(Guell Palace), 구엘 공원(Park Guell), 카사 바트요(Casa Batllo), 카사 밀라(Casa Mila),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이 그것인데 이들 건축물에 숨겨진 비밀을 살펴본다.
카사 비센스(Casa Vicens)
31살에 가우디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다. 바르셀로나에 고급 주택 붐이 일어나고, 가우디에게 별장 건축 의뢰가 온다. 가우디는 5년간 심혈을 기울여 ‘카사 비센스’(비센스의 집이라는 뜻)를 완성한다. 카사 비센스에는 이슬람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 양식이 적용되었는데, 직선미와 튼튼한 기둥 등의 기독교 양식과 첨탑과 화려한 타일이 특징인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양식이다.
스페인에서 형성된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알람브라 궁전, 세비야 대성당 등이 있다. 카사 비센스는 화려한 색상의 아라비아 타일을 사용한 파격적으로 사용했는데, 건축주인 비센스가 타일 공장 사장이어서 가능했다. 사실 건축 과정에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비센스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공 후 카사 비센스는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고, 비센스의 타일 공장 운영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구엘 저택(Guell Palace)
30대 중반에 가우디는 인생 최대의 후원자인 에우세비 구엘을 만난다. 구엘은 섬유사업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훗날 백작 작위를 받는다. 구엘은 1878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가서 가우디가 만든 장갑 전시용 가구를 보고 감탄하여 가우디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베프가 된다.
1886년 구엘은 가족과 함께 살 저택을 의뢰하는데,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건물'을 지어달라는 단 하나의 요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구엘은 매형의 집인 모하 궁전을 경쟁 상대로 보고, 그보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건물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가우디는 4년에 거쳐 ‘구엘 저택’을 완성한다.
유니크한 굴뚝, 모던한 느낌, 철을 활용한 철제 장식, 불사조 상징, 방 하나하나부터 가구와 장식까지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엄청난 공사비가 들었지만 구엘은 개의치 않았고, 매우 만족했다. 이곳은 당시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비, 이탈리아 왕, 미국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등 유명인사가 방문하여 유명해지게 되었고, 가우디의 명성도 높아졌다.
가우디에게 수많은 건축 의뢰가 들어왔고, 이 당시 가우디는 구엘 와인 양조장, 바르셀로나 시의 건축상을 받은 카사 칼베트, 전방 좋은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벨레스구아르드 저택 등을 설계하여 완공했다. 젊은 가우디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최고급으로 옷으로 치장하고 외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구엘 공원(Park Guell)
40대 후반, 쿠바 독립 전쟁(1895-98)과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하와이, 쿠바, 필리핀 등의 식민지를 미국에 빼앗긴다. 구엘은 식민지 무역이 어려워지자 부동산에 투자하게 되는데, 바르셀로나에 고급 주택 단지를 짓기 위해 5만 평의 땅을 구입하고,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한다. 하지만, 이곳은 경사가 가파르고 최악의 지형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가우디는 자연의 원리를 건축에 반영하여 이곳에 구엘 공원을 만들기 시작한다. 바위산에 곡선의 커브길을 내고, 경사로에 길을 내기 위해 친환경적인 요소를 도입한다. 인위적인 첨가물 없이 자연을 재사용하여 겉은 돌이고, 속은 흙을 넣은 기둥을 세우고 위에는 나무를 심었다. 길을 만드는 도중에 나무를 베지 않고 남겨 두었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에 아치형 곡선을 적용해서 튼튼하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었는데, 가우디는 곡선을 신의 선이라고 불렀다. 벤치에는 깨진 타일로 꾸미는 트렌카디스 기법을 사용했고, 딱딱한 벤치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 사람이 앉은 모양으로 본을 떠서 인체공학적인 설계를 적용했다.
비가 오면 표면과 기둥으로 물이 스며들고, 지하에 저장된 저장고로 물이 모인 후에 도마뱀 분수대로 나온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였지만 구엘 공원에 입주하는 부자는 아무도 없었다. 경사가 심해 불편했기 때문인데, 결국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공사는 중단되었고, 60채 중에 단 2채만 분양했다. 한 채는 구엘의 변호사가 구입하고, 한 채는 가우디가 구매했다. 투자에 실패한 구엘은 경제적으로 기울기 시작했지만, 가우디와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고 한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
50대 초반이 된 가우디는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된다. 두 번째 여행지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지구는 쇼핑 일번지로, 8월 중순이 되면 그라시아 마요르 축제, 폭죽놀이 ‘꼬레폭’ 등이 열린다. 바깔라오 콘 토마테, 감바스 알 아히요 요리가 일품이다.
가우디는 당시 유명한 건축가인 카다팔츠가 지은 '카다팔츠의 주택' 바로 옆에 건축을 하게 된다. 가우디 vs 카다팔츠의 대결이 형성된 가운데, 가우디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o)'(바트요의 집이라는 뜻)를 완성한다. 동화 속 집을 연상시키는 카사 바트요의 옥상은 거대한 용을 연상시켜 용의 집이라는 별명이 있다.
가우디는 카탈루냐의 사나운 용 한 마리를 달래려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데, 공주가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하자 조르디 기사가 용을 깔로 찔러 죽이고 공주를 구해 낸다는 카탈루냐 전설을 건축에 녹여내었다. 용의 비닐을 연상시키는 지붕, 해골 발코니, 뼈 기둥, 용의 척추뼈 난간, 용의 심장을 의미하는 붉은 구슬 등이 그것이다.
한편으로 파란색 타일, 물결무늬 유리 난간 등 바다를 연상시키는 실내 장식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가우디는 카사 바트요로 카다팔츠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바르셀로나 대표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카사 밀라(Casa Mila)
부동산 개발업자 밀라 부부의 의뢰로 카사 바트요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카사 밀라'를 건축한다. 카사 밀라는 돌을 형상화하여 표현되었는데, 가우디는 6만 개의 봉우리를 가진 거대한 바위산 몬세라트산에서 영감을 얻었다. 곡선의 미학을 지닌 카사 밀라는 5년 만에 완공되었고, 당시 신문 만평에서 카사밀라를 본 어린이가 한 말은 ‘엄마 여기 지진이 났나요?’였다. 그만큼 카사 밀라는 일반 건축물과 달리 곡선 그 자체였다.
밀라 부부는 여러 가지로 가우디에게 불만이 쌓였다. 기둥 하나가 보행로를 침범해서 건축주인 밀라 부부에게 벌금 부과와 경고장이 날라 왔고 가우디와 크게 다퉜다. 가우디는 4.5미터의 성모 마리아상을 건물 외벽에 세우고 싶었지만 밀라 부부는 거절했고 가우디는 현장에서 떠나 버린다. 가우디는 7년 만에 잔금 소송에서 이기지만, 개인 주택을 짓지 않기로 결심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
93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우디도 50대에 브루셀라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린다. 조카 로사 에헤아가 36세에 병사하고, 1918년 평생의 친구 구엘마저 사망하자, 가우디는 혼자 남아 병에 시달린다. 몸과 마음 모두 처참해진 가우디는 마지막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 온 힘을 다 쏟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근대를 지나 현대에 걸쳐 지어지고 있는 성당으로, 1882년 공사를 시작해 141년째 건축 중이다. 바르셀로나를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게 하고, 바르셀로나의 운명을 바꾼 바로 그 성당으로, 완공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72.5미터로 독일 울름 대성당의 161.5미터보다는 높고,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의 173미터보다는 낮게 설계되었다. 가우디는 인간은 신이 만든 자연과 경쟁해서는 안된다며 몬주익 언덕보다 낮게 설계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가 31살 때부터 공사를 시작했지만, 기부와 헌금으로만 건축비가 만들어져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가우디는 말년에 전재산을 성당 건축에 쏟고, 카사 밀라의 승소금까지 모두 투입했다. 가우디는 중력을 이기도록 하기 위해, 신의 곡선이라고 불리는 현수선을 뒤집은 모양의 현수선 아치를 첨탑 설계와 내부 구조에 적용했다.
성당 외벽에는 예수의 일생을 표현했는데, 동쪽 탄생의 파사드에는 수태고지, 동방 박사의 경배, 아기 예수의 탄생을 담고, 서쪽에는 예수의 수난, 남쪽에는 영광의 파사드를 만들어 성당을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성경을 읽는 효과를 내려고 의도했다.
가우디의 쓸쓸한 죽음과 그가 남긴 감동
72세가 된 허름한 차림의 가우디는 수도사처럼 생활했고 사람들에게 그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매일 저녁 산책하던 가우디는 1926년 전차에 치어 심각한 부상을 입지만, 사람들은 부랑자라고 생각하여 택시 기사도 승차를 거부하고, 병원에서도 부랑자라고 여겨 방치되어 결국 1926년 6월 10일 74세로 병원에서 사망한다.
가우디의 시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 가우디가 만든 성당의 건축 모형이 스페인 내전으로 파괴되자 7명의 건축가가 가우디의 의도를 추측해서 계속해서 성당을 건축하고 있다. 창조적인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평생 고집한 가우디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오고, 특히 아파트로 획일화된 우리나라의 건축 문화도 돌아보게 한다.
이제 우리의 집도 buying space에서 living space로 진행돼야 한다는 임석재 교수의 마지막 멘트가 마음에 다가온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는 가우디의 말에 그의 건축철학이 생생히 느껴진다.
100회 특집으로 진행한 벌거벗은 세계사 가우디 편을 살펴보았다. 천재 건축가이자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그는 돈보다 작품에만 오로지 그의 삶을 던짐으로써, 바르셀로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건축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가우디로 인해 아직 가보지도 않은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건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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