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원은 언제 시작되고, 어떤 변화를 거쳐 왔을까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정원을 단군 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 시대까지 살펴보고, 대표적인 정원 안압지, 소쇄원, 창덕궁을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정원
우리나라의 최초의 정원에 대한 기록은 1929년 김광(金洸)이 저술한 대동사강(大東史鋼)에서 엿볼 수 있는데요. 약 3,900년 전 단군조선 시대에 노을왕(魯乙王)이 유(囿)를 만들어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정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습니다.
>> 삼국시대의 정원
고구려
고구려에는 안학궁에서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안학궁은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한 427년에 건립한 궁성입니다. 현재 평양시 대성산 기슭에 터만 남아 있는 고구려의 옛 왕궁 안학궁에 자연 곡선형의 연못과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자연석으로 된 섬의 흔적이 있습니다.
백제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 물을 채우고 버드나무를 심었고, 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궁남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궁남지는 신라의 인공호수인 안압지보다 40여 년 먼저 만들어졌고, 신라의 안압지의 정원은 궁남지 등의 백제식 조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일본서기의 기록에 보면 백제에서 건너온 노자공이 산악의 모양을 본떠 석가산을 만들고, 궁실의 남쪽 정원에 수미산(須弥山)과 오교(吳橋)로 이루어진 정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수미산은 불교의 성스러운 산이고 오교는 중국 오나라식 석교로 추정되나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본 정원의 효시가 백제, 즉 한반도임을 알려 준다는 점입니다.
신라
신라의 안압지는 사실 신라 때 불렸던 명칭은 아니고 조선 초기의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에 기록된 이름으로 조선시대 폐허로 갈대가 무성한 이곳 호수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찾아와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은 1980년 발굴된 토기 조각 등에 근거하여 이 호수를 월지(月池)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월지는 인공호수로서 조선시대의 경회루처럼 풍류와 연회의 장소로 사용한 곳입니다. 신라에는 또한 임해전, 포석정 등의 정원문화가 있습니다.
>> 고려 시대의 정원
고려 시대의 청평사는 본래 불교의 선을 닦는 곳으로 이자헌이 1089년 큰 규모로 중건하면서 문수원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이자헌은 긴 기간에 걸쳐 주변 계곡에 연못, 정자, 암자 등을 조성하였습니다. 사찰과 연못 등의 인공적인 요소와 계곡의 자연환경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송나라의 영향으로 정원 양식이 화려하고 불교의 사찰식 정원이 발달하였습니다.
>> 조선 시대의 정원
경복궁
조선 시대에는 풍수지리설과 유교의 영향으로 한국적인 형태가 짙은 형식으로 정원이 발전되었습니다. 경복궁의 경회루에는 네모 형태의 연못인 방지형 연못이 있습니다.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동아시아의 천문 우주관이 반영되었습니다. 후원에는 교태전의 평지에 경회루의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쌓아 인공산으로 만든 계단식 정원인 아미산이 있습니다. 교태전에서 태어나는 왕손들이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의 기운을 받도록 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경복궁 후원에는 중심 되는 연못인 향원지가 있습니다.
창덕궁
한편 창덕궁에는 자연 지형이 낮은 곳에 비원이라고 불리는 후원이 조성되었고, 경복궁과 달리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낮은 곳에 정자를 세우고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 주합루, 이수문이 지어졌습니다. 후원 북쪽의 가장 깊숙한 곳에 흐르는 옥류천에는 청의정, 태극정 등의 작은 정자들이 곳곳에 세워져,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정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민가 정원과 별서 정원
조선 시대에는 궁궐보다는 규모나 화려함이 떨어지지만 소박하고 친근한 분위기의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 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행낭마당, 사랑 마당, 안마당 등의 민가 정원이 발달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벼슬이나 당파에서 멀어지고자 따로 깊숙한 곳에 집을 지어 은둔하며 자연을 즐기기 위해 만든 별서(別墅) 정원이 발달하였습니다. 사대부의 본가와 떨어진 곳에 있는 일종의 별장으로서 나무를 거의 심지 않고 가족 행사, 농사에도 사용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남 담양군에 있는 양산보가 조성하였다는 소쇄원, 다산 정약용이 바닷가 괴석을 방지(方池) 안에 설치하여 석가산 형식으로 구성한 다산초당, 윤선도가 여생을 보냈다는 보길도의 부용동 원림은 낙서재(樂書齋), 동천석실(同天石室), 세연정(洗然亭)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본래의 정원문화와 아울러 중국 등의 사상, 문화적인 영향을 수용하여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이루어 왔습니다. 신선 사상의 영향으로 연못이나 섬에 괴석을 배치하고, 정원, 담장, 굴뚝에 십장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후원과 화계식(花階式) 정원이 조성되었고,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각종 정자가 발달하였습니다.
한국의 정원은 꾸미기는 하지만 꾸미지 않은 자연주의적인 정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목의 인공적인 처리보다는 주로 낙엽활엽수로 계절의 변화를 즐기는 정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그 특징을 들자면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는 힘의 예술, 통일신라 시대에는 꿈의 예술, 고려 시대에는 슬픔의 예술, 조선 시대에는 멋의 예술을 시대별 정원 곳곳에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원을 만들되
너무 인위적이지 않은...
우리의 정원 문화는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에도
우리다움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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