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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문

벌거벗은 세계사 91회 - 이집트 피라미드, 미라,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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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에 방영된 벌거벗은 세계사 91회, 고대 이집트 미스터리 피라미드와 미라의 비밀 편을 살펴보자. 고대 이집트의 찬란했던 문명과 그 중심에 있던 절대 권력 파라오. 사후 세계를 믿었던 그들은 왕, 귀족은 물론 일반인도 미라를 만들고, 사후에 지낼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한다. 람세스 2세, 투탕카멘 등 이집트 파라오의 유적을 통해 인류 초기 이집트를 살펴보자.

 

 

고대 이집트 벽화
고대 이집트 벽화에 그려진 이집트인들의 생활

 

 

기원전 3,200년 전부터 3천 년 동안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비옥한 땅에서 밀과 보리농사를 지으며, 파라오의 절대 권력 속에 건축, 의학, 패션 등 인류 최초의 문명이 꽃피운다. 피라미드와 미라를 통해 이집트 문명을 들여다본다.

 

>> 이집트의 고대 유적

피라미드와 미라는 이집트인이 사후 세계를 믿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왕과 귀족이 죽은 후에도 살 수 있는 공간이 피라미드이고, 다시 살아나서 육체에 깃들어야 했기에 부패하지 않는 미라를 만들었다. 왕과 귀족뿐 아니라, 일반인도 미라를 만들었다.

 

 

 

 

피라미드

4,500년 전에 세워진 쿠푸 왕 피라미드는 바닥 면의 길이가 230m, 높이가 470m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5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쌓아 올린 돌의 개수가 230개이고, 돌 하나의 무게가 2t에서 최대 7t에 달한다.

 

거대한 돌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운반해 왔을까? 돌은 나일강 주변의 강에서 캐서, 배를 이용해 나일강과 수로를 따라 이동시켰고, 육지에서는 돌을 올려놓는 받침대와 받침대를 끌 수 있는 트랙을 만들고 돌 한 개에 75명이 달라붙어 공사 현장까지 운반했다.

 

운반한 돌은 어떻게 높이 쌓아 올린 것일까? 한때 거인이 옮겼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피라미드는 이집트인의 과학적인 계획으로 완성된 것이다. 우선 돌의 밑면을 정사각형으로 만들기 위해 매듭이 있는 밧줄을 이용해 직각과 길이를 측정해 돌을 완성했다.

 

만들어진 돌은 경사로를 만들어 밑에서부터 한 층씩 쌓아 올렸다. 노예들을 동원한 것은 아니고, 농민과 건축 노동자 1만 명이 20년 동안 만든 것이다. 하루 8시간씩 8일 일하고 2일을 쉬었고, 임금을 받았다고 한다. 파라오는 이들을 독려하기 위해 자양 강장에 도움을 주는 마늘과 양파를 하사했다.

 

미라

미라는 머리의 뇌와 장기를 제거하고 머릿속을 채운 후 소금 성분인 나트론(natron)으로 시체 전체를 씌워 40일 동안 탈수 과정을 거친다. 몸에도 보조물을 넣어 채우고, 향나무 밀랍을 바르고 붕대로 감싸 목관, 석관에 보관하고, 파라오는 황금관에 안치한다. 총 70일이 걸리는 과정이다.

 

근대 시기 이집트를 넘나들던 유럽인들은 미라를 기념품으로 유통하기도 하고, 미라를 갈아서 만든 무미야(MUMIA)를 약으로 거래하기도 했다. 머미브라운이라는 미라로 만든 갈색 물감도 사용했다.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인 고양이 미라, 왕실 반려동물인 개코원숭이 미라, 신앙의 대상인 악어 미라 등 동물 미라도 발견된다.

 

 

 

 

>> 파라오와 이집트 문명

람세스 2세

기원전 1279년~1212년 66년 동안 파라오로 제외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던 파라오이다. 람세스 2세의 무덤은 사후 60년 후에 도굴꾼들에게 파헤쳐지고, 람세스 2세는 다시 다른 왕비, 왕족 등 50구의 미라와 함께 비밀스러운 장소로 옮겨진다.

 

람세스 2세의 할아버지는 군인이었으나, 당시 파라오의 후계자가 없어 파라오가 된다. 파라오가 된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앙숙이던 히타이트와의 평화조약을 맺고, 교역을 통해 경제적 풍요를 가져온다. 올리브유, 포도주, 아편, 구리, 토기 등을 수입했고, 이집트의 수학, 천문학을 소아시아 지역으로 전파했다. 91세까지 파라오로 재위하며, 무려 66년 동안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꽃피운다.

 

문명의 발달

전문 의학

안과, 외과, 산부인과 등 전문 의학이 발달했다. 다양한 외과 수술 도구가 있었고, 가장 오래된 이집트 의학 문서 ‘카훈 파피루스’에는 다산, 임신, 피임 등 부인과 질환의 내용이 나온다. 밀과 보리에 소변을 누어 임신 여부를 테스트해서, 밀에서 싹이 나면 딸, 보리에 싹이 나면 아들, 둘 다 싹이 안 나면 임신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했다. 인공 발가락, 악어 배설물, 아카시아 잎, 꿀로 만든 인류 최초 피임약을 사용했다.

 

패션 문화

소금으로 몸을 씻고, 우유와 꿀 마스크 팩을 했고, 보석으로 눈화장했다. 붉은 염료로 머리카락 염색했고, 최초의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를 사용했다. 줄무늬 패턴이 있는 양말도 발견되고, 남녀 모두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가발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는 패션의 왕조였다.

 

 

 

 

신전과 왕가의 계곡

아부심벨 신전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람세스 2세를 신격화한 신전이다. 신전 입구에는 가로 210m, 높이 65m의 바위산을 깎아 만든 20m 높이의 4개의 람세스 2세 좌상이 있고, 입구 통로에도 람세스 2세 입상 8개가 있다. 아부심벨 신전은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으나, 전 세계 모금 활동 등으로 다행히 다른 곳으로 무사히 이전되었다.

 

가장 깊은 지성소에는 광물의 신 프타, 국가신 아문, 람세스 2세, 태양신 라의 좌상이 있는데, 1년에 춘분과 추분이 되어 해가 떠오르면, 프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좌상에 태양 빛이 비친다. 이 두 번의 시기는 람세스 2세의 즉위 일이 있는 2월과 생일이 있는 10월로 건축적 계산으로 의도된 것이라 한다.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왕가의 계곡

도굴꾼을 막기 위해 투트모세 1세는 산에 굴을 뚫어 왕가의 묘역을 만들었고, 람세스 2세가 확장했다. 왕가의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을 만드는 사람들은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대우받았다. 람세스 2세는 이들에게 하인과 시종을 붙여 주고, 곡물, 기름, 생선, 채소, 고기, 포도주 등을 지원했다. 람세스 2세도 이곳에 안치되지만, 결국 도굴꾼에게 소장품들을 도굴당하고 1881년 미라가 발견된다.

 

투탕카멘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온전한 무덤이 발견된다. 3,300년 전 사망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황금마스크, 황금 왕좌, 황금관, 왕의 장기를 보관한 카노푸스 단지들, 전차, 방패, 보물 등 5,300개의 소장품이 함께 발견된다.

 

2007년 투탕카멘 미라가 공개되었는데, 투탕카멘은 9년 동안 제위에 있었다. 파라오의 저주라 하여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사람들이 원인불명 등으로 의문사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는 전에 발굴 인원 1,500명 중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라오의 저주라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12세 소년 압둘라 술은 93세까지 장수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이집트 학자인 유성환 교수의 해설로 진행된 벌거벗은 세계사 91회를 리뷰해 보았다. 고대 문명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를 믿었고, 이러한 믿음으로 피라미드와 미라를 만들었다. 피라미드와 미라에는 찬란히 꽃 피웠던 이집트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에게는 미스터리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이고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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