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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문

벌거벗은 세계사 94회,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모짜르트)와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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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화요일 밤 10시 10분에 벌거벗은 세계사 94회를 tvN에서 방영한다. 4살에 작곡을 시작하여 평생 600곡을 작곡한 천재 모차르트이지만, 화려한 명성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중생활 이야기가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활동과 그의 뒷면에 숨겨져 있는 이중생활, 그리고 생애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모차르트의 걸작 레퀴엠에 숨겨진 미스터리까지 살펴보자.

 

 

벌거벗은 세계사 94회, 모차르트
벌거벗은 세계사 94회, 모차르트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애

잘츠부르크 어린 시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ffgang Amadeus Mozart)는 음악가이자 바이올린 교육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1787)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1720~1778) 사이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다.

 

 

 

 

잘츠부르크는 소금 요새라는 뜻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542m에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의 성인 호엔잘츠부르크성,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송을 부른 장소인 미라벨 정원, 모차르트가 17살까지 살았던 모차르트 생가, 녹켈른 디저트 등이 유명하다. 

 

모차르트는 3살 때 누나 난네를이 연주하는 곡을 외워서 피아노와 비슷한 하프시코드(Harpsichord, 이탈리아어로는 클라비쳄발로 clavicembalo라고 함)를 연주하여 아버지 레오폴트의 관심이 모차르트에게 향하는 계기가 된다. 4살에 작곡을 시작하였고, 6살에는 배워본 적이 없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8살 때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 12살에는 오페라 <가짜 바보>를 2달만에 완성하지만, 어른 작곡가들의 시기와 질투로 공연하지는 못했고, 바스티앙 바스티엔 오페라를 작곡하여 초연에 성공한다.  

 

 

3살 때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3살부터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모차르트

 

 

연주 여행

7살에 아버지와 함께 3년 5개월동안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등 유럽 21개 도시를 돌며 유럽 연주 투어를 다녀 온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와 영국 왕 조지 3세 앞에서 연주하며 극찬을 얻었고 아버지의 홍보 활동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장시간의 마차 이동과 열악한 숙소 등의 강행군으로 모차르트의 건강은 나빠졌고, 천연두에 걸려 죽을 뻔하기도 했다. 이 때의 영향으로 모차르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769년 두 번째 음악 여행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유명한 <미제레레>를 듣는다. 당시 교황의 명에 의해 미제레레의 악보가 유출되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모차르트 방문 이후로 미제레레의 악보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한 번 들은 후에 악보를 통째로 암기하여 써내려 갔던 것이다. 교황은 오히려 감동하여 모차르트에게 황금박차 훈장을 수여한다.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가

궁정 음악가를 꿈꾸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가 되지만, 콜로레도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고용한 하인으로 취급하면서 자기 곁에 묶어 두려고 하고, 모차르트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려고 하면서 불만이 쌓인다. 모차르트가 연주 여행을 떠나려 하자 해고당하고, 어머니와 연주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사촌동생 베슬레와 사랑에 빠지고, 분변 표현이 들어간 러브 레터를 보낸다. 한 달 만에 만하임에서 알로이지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나, 아버지의 질책으로 파리로 이동한다. 파리에서 엄마가 죽고 모차르트는 다시 잘츠부르크로 실의에 빠져 돌아온다.

 

 

 

 

빈에서의 새로운 출발

 

모차르트는 다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음악가가 되지만, 이내 갈등이 폭발하고, 25살에 빈에서의 홀로서기에 도전한다. 당시 새로운 악기인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하여 이를 통한 수입이 발생한다. 피아노 협주곡도 많이 작곡했는데,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유명한 <터키 행진곡>, 오페라 <후궁 탈출>을 작곡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다. 

 

모차르트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로 지출도 많아 빚에 시달렸고, 도박과 내기 당구에 심취했다. 그 와중에도 1786년 18세기의 대표적인 오페라로 귀족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 1787년 작품성이 탄탄한 <돈 조반니> 같은 대작을 작곡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모차르트의 이야기에는 살리에르가 항상 등장한다. 보통은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얘기들이 나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당시 빈의 궁정 음악가였던 살리에르를 질투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후세에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쓴 소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차르트를 질투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라는 스토리가 퍼지고 퍼져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질투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다. 

 

 

 

 

빈의 궁정 음악가

1787년 아버지 레오폴트가 병으로 죽고, 모차르트는 31세에 궁정 음악가로 취업한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 vs 오스만제국의 전쟁에 신성로마제국이 러시아 편에 서서 참전함으로써, 빈의 재정이 악화되고, 빈의 음악 활동도 중단 상태가 되면서, 모차르트는 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작품 활동을 그치지 않고 1791년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독일어 오페라 <마술 피리> 등을 작곡한다. 마술피리의 대표곡은 ‘밤의 여왕의 아리아’이다.

 

위대한 업적

모차르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손꼽힌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오페라,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등 평생에 걸쳐 600 이상의 곡을 작곡하였다. 현존하는 곡은 626곡이다. 작품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의 곡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짜임새 있는 구조, 대중성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곡들이다.

 

기악과 성악의 구분 없이 모든 형식의 음악에 능통했고, 기악곡의 경우 독주곡,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 등에서 다양한 악기를 조합하는 작품을 남겼고, 성악곡 경우에도 독창곡, 합창곡, 오페라, 종교음악 등 음악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천재였다.

 

 

 

 

 

>>모차르트를 둘러싼 의혹과 이중생활

숨겨진 모차르트 이야기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화려한 천재성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밝혀질 내용을 미리 살펴보자.

 

분변음욕증(스카톨로지)

모차르트는 사람의 배설물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변태적 취향의 분변음욕증이 있었다. 스카톨로지(Scatology)라고 하는데 모차르트의 첫사랑인 사촌 누나 베즐레에게 보낸 편지에 배설물에 대한 언급이나 배변과 관련된 농담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베즐레 외에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발견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371통의 편지 중에 39통에서 인분이 언급되어 있다. 다만, 18세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배변을 소재로 하는 농담들이 유행이어서, 모차르트의 경우 어느 정도까지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사회적인 배경과 통념을 고려하여 모차르트의 경우를 살펴보는 관점도 있는 것이다.

 

도박과 내기 당구를 일삼던 빚쟁이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결혼하고 아내에게만 충실했다. 여자관계는 깨끗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낭비와 사치가 심했고 도박과 내기 당구 등을 일삼은 빵점 가장이었다. 모차르트 못지않게 아내 콘스탄체 또한 부유한 집안의 출신이어서 사교생활 등으로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 가정의 생계라는 측면에서도 모차르트는 뼈가 빠지게 작곡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레퀴엠

레퀴엠(Requiem)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가톨릭교회에서 연주하는 미사 음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진혼곡이라고 부른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1791년에 작곡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작이다. 원래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 작곡을 부탁한 곡인데, 모차르트는 저승사자 같은 망상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마음으로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는 건강이 계속되었고, 결국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1791년 12월 5일 숨을 거둔다.

 

모차르트 사후 아내 콘스탄체는 거액의 계약금이 걸린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완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결국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Süssmayr)가 1792년에 완성한다. 발제크 백작은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위장하여 1793년 레퀴엠을 연주하지만, 모인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곡인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친필 악보
모차르트의 레퀴엠 친필 악보

 

 

4월 11일 화요일 밤 10시 10분에 tvN에서 방영된 벌거벗은 세계사 94회를 살펴보았다. 35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모차르트의 음악과 생애는 수많은 음악가 뿐만 아니라 푸시킨, 키르케고르, 조지 버나드 쇼와 같은 작가와 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모차르트가 남긴 말을 통해 그의 면모를 짐작해 보자. “천재를 만드는 것은 지성도 아니고 상상력도 아니다. 사랑, 사랑, 열렬한 사랑이 천재의 영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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