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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문

벌거벗은 세계사 83회 양귀비 현종과 당 제국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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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저녁 10시 10분에 방송하는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를 리뷰하여, 글로벌 역사를 좀 더 재미있게 들여다보고 과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이해해 봅니다.

 

오늘은 1월 24일에 방영되었던 벌거벗은 세계사 83회 "양귀비! 당 제국을 몰락시킨 금단의 사랑" 편을 리뷰합니다. 당대 최고의 미인 양귀비와 양귀비와의 사랑에 진심이었던 당나라 현종, 이 둘 간의 사랑 속에 몰락의 길을 걸었던 당 제국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83회 - 양귀비와 현종
벌거벗은 세계사 83회 - 양귀비와 현종

 

>> 당나라와 현종

수나라를 이어 당 고조인 이연에 의해 618년 건국된 당나라는 수도를 장안으로 삼고, 낙양이 부수적인 수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당 고조(618년), 당 태종(626년), 측천무후(690년)의 시대를 지나 당 현종(712년)이 즉위하게 되는데, 당 현종은 국가를 재정비하고 교류가 발달하여 개원 성세(713년~741년)라는 태평성대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하지만, 당 현종은 치세 말년(742년~756년)에는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함으로써 당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당나라는 안녹산의 난, 황소의 난 등을 거쳐 907년에 멸망합니다. 

 

>> 양귀비의 미모와 매력

당나라 시대에는 미인으로 인정되려면 통통한 얼굴과 풍만한 몸매, 새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풍성한 머리숱이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양귀비 또한 당시 미인의 기준으로 볼 때 최고의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양귀비를 수화(羞花)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양귀비가 궁궐 정원을 거닐다가 꽃을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꽃들조차 양귀비의 미모 앞에서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양귀비는 외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한 중앙아시아의 춤 호선무의 최고 실력자이고, 비파와 공후를 연주하는 등 미모와 재주를 겸비한 매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 황제의 후궁 양귀비

719년 쓰촨천성에서 태어난 양귀비의 이름은 양옥환이라고 합니다. 10세 때 부모가 잃고 하급 관리 양현교의 수양딸이 됩니다. 735년(16세)에 현종과 무혜비의 알들인 수왕의 아내가 됩니다. 현종이 사랑하던 무혜비가 죽고, 현종의 최측근인 환관 고력사는 화조사를 파견해서 현종의 후궁을 찾아 나서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현종은 외모뿐만 아니라 교양과 예술적 조예를 중시했다고 하죠.

 

현종의 눈에 양귀비가 들어오고, 현종이 마련한 연회에서 처음 만납니다. 이때 현종은 55세, 양귀비는 21세. 며느리였던 양귀비를 곧바로 후궁으로 취할 수 없던 현종은 양귀비를 도교 사원으로 보내 승려로 신분을 바꿉니다. 황궁 안의 도교 사원으로 양귀비를 들이고, 744년(현종 60세, 양귀비 25살)에 양귀비는 후궁의 최고인 귀비에 책봉됩니다. 121명의 후궁과 4만 명의 궁녀들 속에서 양귀비는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섭니다.

 

양귀비는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는 콤플렉스가 있어 화청지에서 늘 목욕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화청출욕도라는 그림에 이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당대의 시인 백거이 또한 장한가에서 묘사하였습니다. 

 

양귀비와 현종은 서로 질투하였는데, 양귀비는 현종이 매비라는 후궁과 가까워지자 이를 질투하였고 결국 현종에게 잠깐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양귀비가 현종의 형제인 영왕의 옥피리를 가지고 부는 모습에 현종도 심하게 질투심을 느껴 또 한 번 양귀비를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현종은 양귀비를 너무 사랑하였고, 양귀비가 좋아하는 과일 리치는 광동에서 장안까지 밤낮 말을 달려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 양귀비를 둘러싼 세력

현종은 양귀비의 가족에 엄청나게 잘해 주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와 친척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양귀비의 친척 오빠를 무혜비의 딸인 태화공주와 결혼시킵니다. 특히, 양귀비의 세 언니를 장안으로 데려와 엄청난 부를 안깁니다. 세 자매의 탐욕으로 양씨 집안의 집에는 뇌물이 가득 들어찹니다. 752년 양귀비의 6촌 오빠인 양국충이 재상에 올라 40여 개의 관직을 독차지하고 양국충의 세상이 됩니다. 

 

양귀비는 안녹산을 양아들로 맞아들이고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등 안녹산의 세력이 커집니다. 양국충과 안녹산은 주변에 오랑캐를 무찌르는 것으로 서로 충성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양국충이 무리하여 오랑캐의 하나인 남조와 전쟁을 벌이다 패배하고 맙니다. 오랑캐가 침범하고 백성들은 비참해지는 와중에도 현종은 양귀비의 치마폭에 쌓여 정무를 외척, 환관, 간신들에게 맡겨 버리고 맙니다.

 

 

 

 

>> 안녹산의 난과 당 제국의 몰락

양국충의 세력으로 인해 안녹산의 입지가 좁아지자, 나라를 망치는 양국충을 없애자는 명목으로 당시 당나라 군대의 삼 분의 일에 해당하는 15만의 병사를 데리고 안녹산의 난을 일으킵니다.(755년) 불과 1달 만에 장안 옆에 있는 낙양까지 쳐들어오고, 현종과 양귀비는 서쪽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병사들은 양귀비 일가의 처단을 요구하고, 양국충과 세 자매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병사들은 현종에게 양귀비의 죽임을 요구하고, 환관 고력사가 현종을 대신해 37세의 양귀비의 목을 비단에 메어 죽게 합니다. 

 

양귀비가 죽은 후 현종은 황제의 자리를 아들 숙종에게 물려주고는 양귀비 없이 6년을 살다가 77세로 숨을 거둡니다. 당 제국 또한 이때부터 쇠퇴의 길을 걸어 907년 결국 몰락하고 맙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83회를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 양귀비와 양귀비를 사랑했던 당나라 현종, 그리고 정사를 나 몰라라 했던 현종의 실정 속에 몰락의 길을 걸었던 당 제국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대부분 왕과 유명한 인물 위주로 비중 있게 기록되는 것 같습니다.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들도 당의 몰락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 역사가들에 의해 극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 당시 시인이었던 두보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비참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시들을 읊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바라보는 대상과 얘깃거리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언론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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